[V X 여주] 아네모네인 당신에게 디모르포세카를
아네모네 : 아픈 사랑, 그리움
디모르포세카 : 행복, 치유
*스포주의
*약한 커플
"해킹당했다고?!"
"응, 그렇게 된 것 같아..."
리카가 살았던 오피스텔에 리카를 대신해주는 여성분이 살고 있다. 문제가 되는 건 그 오피스텔에는 리카가 폭탄을 설치했었다는 것과, 방금 그 폭탄의 주도권을 빼앗겼다는 것이다.
"그, 그 여성분은 괜찮은 상태야?"
"모르겠어. 안 보이는 걸로 봐선 집 안에 있는 상태인데, CCTV를 집 안까지 보이도록 설치한 건 아니라서."
미칠 것 같다. 아무런 관련도 없는 사람의 목숨이 나 때문에 위험해지다니. 이럴 줄 알았으면 부탁하지 말 걸. 그냥 RFA와의 연결고리를 끊어놓을걸.
"...복구하는데 얼마 정도 걸릴 것 같아?"
"모르겠어. 지금 정보원 일도 해야 하고... 최대한 빨리해볼게. 지금 시작할 거니까 우선 끊어."
어떡하지. 나는 리카를 쫓아야 해서 그 사람을 지켜줄 수 없는데. 내가 뭘 해줄 수 없는 걸까?
나는 걱정이 되어서 반쯤 미쳐버렸고, 리카와 그 사람의 사이에서 나는 계속 갈등했다. 난 리카를 구해야 해. 그러려면 리카에게 가야 해.
하지만 그 사람은? 루시엘에게 다 맡기면 될까? 하지만 너무 불안해. 리카가 세란이에게 행동을 맡겼으니 세란이가 그 사람에게 해를 입힐 텐데. 어떡하지?
"뭐야, 형? 방금 통화했잖아?"
"세븐아, 나 대신 그 여성분에게 갈 사람은 없을까?"
"무슨 소리야? 형이 먼저 오피스텔의 장소는 기밀이라고 말했잖아."
"그래, 그렇지. 하지만 너무 걱정되니까..."
"알았어. 정보원 일 최대한 제쳐두고 풀어볼게. 걱정하지 마."
"그래, 알았어."
그리고 통화를 끊고 진정하려 했지만 다시 밀려오는 걱정과, 불안한 예감. 불안한 생각들. 해킹은 아마 세란이가 했을 거야. 리카가 시켰을 테니까. 파티에 소개된 사람들을 민트아이 쪽으로 넘기기 위해서.
그렇다면 세란이가 지금 그 사람을 위협하고 정보를 요구하려 오는 중일 수도 있어. 아니면 가까운 곳에서 해킹을 시도했겠지. 그렇다면 지금 당장 누군가가 지켜줘야 하지 않을까?
"아, 형! 왜 또?"
"세븐아, 너무 불안해. 누군가가 그 사람을 지켜줘야 할 것 같아."
"내가 CCTV로 보고 있다니까? 걱정할 것 없어!"
"그래, 그렇겠지? 계속 전화해서 미안해. 먼저 끊을게."
그래, 루시엘이 지켜주고 있어. 루시엘은 믿을 만 하니까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야...
...하지만 CCTV로 지켜보기만 하는 것 아냐? 다른 곳에 별다른 장치를 설치해 두었다는 말은 들은 적 없어. 게다가 CCTV에 사각지대가 있을 수도 있는데...
"아, 형!!"
"미안, 정말 미안. 하지만 CCTV만으로는 무리가 있지 않나 싶어서."
"후, 형. 형이 자꾸 이렇게 전화로 방해하면 내가 해킹하는 게 더 늦어질 뿐이야! 형도 알잖아!"
"알지. 그렇지만 지금 제정신이 아닐 정도로 너무 걱정이 돼. 하아, 나도 잘 모르겠다."
"최대한. 빨리. 알고리즘을, 풀 테니까. 제발. 전화. 그만해. 알고리즘이 풀리면 바로 형한테 연락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그때 되면 형이 직접 지켜주던가 하라고! 일단 난 끊는다?"
'형, 폭탄을 다시 원상복귀 시켜놨어. 들어가도 폭탄은 안 터져. 그동안 형이 하도 전화를 해대서 엄~청 늦어진 거라고! 가서 형이 지켜줘. 다치지 않게!'
루시엘이 폭탄을 해제시켰다. RFA 멤버들은 당연하지만 모두 발칵 뒤집혔고, 그 사람은 침착했지만 아마 제일 무섭고, 불안할 테지.
미안해요, 내가 차라리 당신을 끌어들이지 않는 편이 좋았어.
"V...씨?"
실제로 본 그녀는 긴 갈색 머리를 가진 참 순수하고 깨끗한 이미지다. 마치 리카처럼.
"저를 알고 계시네요?"
"그야, 프로필에 얼굴이... 있으니까요. 무슨 일이세요?"
"미안해요. 폭탄이 설치되어 있다는 걸 미리 말해주지 못 해서. 하지만 알면 분명 불안해할까 봐 일부러 이야기 안 했어요.
그런 중요한 건 당연히 말했어야죠! 하며 유성이가 내 뒤에서 소리치는 것만 같다. 유성이 너에게도 정말 미안한 일이 많구나.
"그, 들어오시라고 하고는 싶은데... 폭탄이 터질지도 몰라서...!"
"괜찮아요. 루시엘이 폭탄을 다시 복구시켰어요. 이제 괜찮아요. 그리고 기본적으로 터지기 전에 카운트다운을 세니까, 그전에 나가면 돼요.
"아, 그럼 들어오세요...!"
"저기, 그 눈은..."
"사고로 다친 것뿐이에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엄청 신경 쓰이는걸요?라고 조용히 읊조리는 소리가 들린다. 미안해요, 신경 쓰이게 해서. 신경 쓰이게 하려고 온 건 아닌데.
"그나저나 무슨 일로 오셨어요?"
"제 예상으로는 오피스텔을 해킹한 사람이 올 거예요.
"네?!"
"그래서, 지켜주러 왔어요. 나 때문에 이런 일을 겪었는데 지켜드려야죠."
눈이 좋지 않은 게 지금은 참 슬프네요. 당신의 얼굴을 선명히 볼 수 없다는 게. 지금 당신의 표정을 선명히 보고 싶은데.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그럴 가능성이 높아요. 오피스텔의 위치는 기밀이라 직접 왔어요."
"죄송해요, 저 때문에..."
"오히려 저 때문이죠. 이런 일을 겪지 않아도 될 아름다운 사람이 제 부탁으로 이렇게 목숨이 위험해졌잖아요."
잘 보이지 않는 눈. 거기에 선글라스까지 더해져 거의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 하지만 당신의 얼굴은 조금은 선명히 보이는 것 같네요. 역시 당신은 아름답군요.
"저, 차라도 드실래요? 제가 차를 좋아해서 많거든요!"
"그럼 부탁드려도 될까요?"
"네, 조금만 기다리세요!"
길게 풀어져있던 갈색 머리를 하나로 높게 묶으며 부엌으로 가며 어떤 차가 좋을까, 하며 입으로 소리 내어 고르는 당신.
당신에게 정말 미안하네요. 이런 일을 겪게 해서. 정말 미안해요.
챙그랑-!
세란이다. 세란이가 왔다.
"뭐야, 네가 왜 여기 있는 거지?
"세란아, 돌아가."
"뭐?"
세영이와 쌍둥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듯 세란이는 항상 탈색을 하고 렌즈를 끼고 다녔다. 어릴 적의 약했던 세란이는 없어지고, 리카에 의해 증오만이 남은 세란이가 되어버렸다.
"돌아가, 세란아."
"내 이름 부르지 마, 배신자."
"V씨? 무슨 일... 누구세요?!"
"여주 씨, 들어가요!"
"뭐야, 둘이 같이 있었던 거야?"
소란에 여주 씨가 밖으로 얼굴을 비췄고, 세란이가 얼굴을 봐버렸다. 나는 더 이상 누군가 다치는 걸 원하지 않아.
"하! 구원자님이 아시면 참 좋아하시겠군. 아니지, 예전 감정은 없어지셨을 테니까 그저 괘씸하시려나?"
'이방인이 발견되었습니다.'
"뭐, 뭐야?!"
'이방인의 위치 감지... 타겟 조정.'
"아마 세란이 너를 이방인으로 감지하는 걸 거야. 루시엘이 복구했거든."
"뭐?"
흔들리는 눈빛으로 날 보는 세란이. 그래, 루시엘이 네가 바꾼 알고리즘을 단시간에 해킹해서 바꿨다는 게 믿고 싶지 않겠지.
나는 너희 형제에게 정말 몹쓸 짓을 하는구나.
"이대로 있다간 여기가 폭발해. 어서 나가!"
'자료 백업 중... 자료 백업 후 폭탄 작동을 개시합니다. 남은 시간 20초.'
"빨리 나가지 않으면 모두 죽어!"
"너..."
"V씨! 어떻게 되는 거예요?"
"걱정 말아요, 괜찮을 거예요."
세란이는 곧 나갈 거예요. 당신을 데리고 있지도 않고, 원하는 것을 아직 얻지 못한 상태니까.
"구원자님께서 널 절대 용서하지 않으실 거니까 각오해!"
'이방인 실종. 공격 중지. 특수 보안 시스템을 감시 상태로 전환합니다.'
세란이가 나가고 특수 보안 시스템이 종료되었다. 이제 한시름 놓을 수 있어. 이제 안전해.
"저, V 씨, 괜찮으세요?"
"네? 아... 괜찮아요. 고마워요."
"안색이 별로 안 좋으신데...
"아니에요. 괜찮아요. 저, 미안하지만 이제 가야겠어요. 급하게 할 일이 있어서."
"혹시 저 때문에 미루고 오신 건가요?"
당신이 걱정되니까요. 하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안돼. 나는 리카를 돌려놔야 해.
"괜찮아요. 이만 가볼게요."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너무 자책하지는 마세요. V 씨는 자책하는 게 조금 있는 것 같아요."
"아... 그런가요?"
"네. 이거 레몬밤 차인데, 스트레스에 도움이 되거든요. 급하시면 들고 가세요!"
"참 상냥한 분이네요."
오피스텔을 나와 받아든 레몬밤 차를 조금 마셨다. 진한 레몬의 향기가 코 끝을 감쌌고, 기분 탓인지 조금은 진정되는 것 같았다.
"...당신을 닮은 차네요."
조금은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나는 당신에게 위험한 일을 겪게 했는데 당신은 날 위로해 주는군요.
정말 따뜻하고, 순수한 사람. 그리고 내가 처음 봤었던 리카처럼.
마음을 추스른 후에 차를 타고 민트아이 쪽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 계속 그 사람의 얼굴과 목소리가 떠올랐다.
당신이 더는 다치지 않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겠어요. 그리고 리카, 네가 그 사람을 다치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왜인지는 모르겠어. 그 사람이 내게 너무 따뜻한 사람이어서일까? 그 사람이 다치는 걸 나는 보기 싫어.
미안해, 리카. 조금만 기다려. 내가 널 곧 구해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