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7 X Unknown] 쌍둥이 천사 이야기
메리골드 : 가엾은 애정, 이별의 슬픔,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
주군의 한 손에서 동시에 만들어진 너와 나.
우리는 눈이 닮았고, 코가 닮았고, 입이 닮았어.
너와 나의 어릴 적은 성격이 닮았을 테고, 행동이 닮았을 테고, 목소리도 닮았을 테지.
우리가 헤어지기 전까진.
한 손에서 태어났던 우리는 서로 손을 잡고 이곳저곳을 누비는 걸 좋아했었어.
항상 나는 오른쪽, 너는 왼쪽에 서서 길을 다녔지. 날개가 약해 날 수 없었던 너에게 나는 항상 날개가 되어 주었고, 항상 우울한 나를 밝게 비추어 주었던 너는 내게 크리스털과 같았어. 너와 나는 마치 한 몸처럼 그렇게 다녔지.
나는 항상 칼라 꽃을 꺾어 너에게 주었어. 칼라의 꽃말처럼 순수하고 청정한 너를 천 년간 기억하고 사랑한다는 의미에서.
하지만 너와 나의 손이 떨어진 후에는 다시는 너에게 칼라 꽃을 줄 수 없었어.
"세란아? 세란아?!"
나는 너의 손을 놓쳤고, 다시 잡을 수 없었어. 너의 그 하얗고 약하던, 바짝 말라버린 낙엽처럼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만 같던 손을 다신 찾을 수 없었어.
나는 너에게 가는 길을 잃어버렸고, 너를 찾으려 나는 곳곳을 돌아다녔어. 내 등에 돋아있는 커다랗고 하얀 날개가 뜯어져 없어질 정도로 너만을 찾았어.
하지만 너는 내 눈에 비치지 않았지. 내가 뭘 잘못한 걸까. 그날은 그냥 너와 손을 꼬옥 붙잡고 있기만 해야 했던 걸까.
세란아, 내가 미안해. 내가 조금 더 너를 신경 썼었더라면. 내가 조금 더 너를 바라보았었다면.
그렇다면 넌 길을 잃어버려 검은 날개가 되지 않았을 텐데.
내 반쪽이 사라진, 널 잃어버린 나는 네가 좋아하던 곳에 금잔화를 심었어. 너를 잃은 실망, 비탄, 비애를 담아.
그리고 그 옆에는 물망초도 함께 심었어. 네가 나를 잊지 않기를 빌며. 또 내가 너를 계속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도록. 부디 나와 네가 서로를 잊지 않고 살기를 빌면서. 우리는 언젠간 분명 다시 만날 수 있을 테니까.
그 만남이 설령 비극일지라도 난 너에게 무릎 꿇어야 하니까.
나의 주군을 대적하는 반군이 오고 있다는 소식에 나간 전투에서 나는 나의 잃어버린, 나의 구원이었던 나의 크리스털을 만났다.
"세란... 이니?"
너의
어릴 적 모습은 지금도 내 눈앞에 있는 것처럼 생생히 기억하고 있어. 너의 어릴 적 모습은 분명 작지만 분명 나와 같은 하얀
날개를 펼쳤었어. 그 눈부신 크리스털 같은 너의 날개와 너의 미소는 날 구원해주었어. 하지만 지금의 너는 아니구나.
나와
같은 주홍색이었던 머리칼은 어떻게 된 건지 하얗게 변해버렸고, 나와 같은 주홍색의 반짝이던 동공은 탁한 민트색이 되었고,
크리스털과 같던 너의 미소는 금이 가고 깨져서 슬픈 표정을 하고 있어. 그리고 작고 우아했던 너의 날개는 마치 너의 표정과, 나의
표정처럼. 하지만 더욱 빛나는 검은 다이아몬드가 되어 너의 등 뒤를 환하게 비추고 있어. 지금의 나와는 완전히 다른. 너와 나는
같지만 같지 않게 되어버렸어.
"... 내 이름 아니야."
한참을 입을 다물고 있던 너의 입이 힘겹게 떨어지고 흘러나온 너의 목소리.
다행이야, 목소리는 변하지 않았어. 고마워, 내게 말을 해줘서. 미안해, 널 놓쳐버려서.
"세란아, 집에 가자. 응? 집에 가자..."
"집어치워, 배신자."
세란이의 입에서 '배신자'라는 말이 나왔다. 그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 미안해, 내가 미안해. 혼자서 날지 못하는 너에게 너무 큰 슬픔을 안겨줘서.
"아냐, 세란아. 난 널 잊지 않았어."
세란이의 눈에 비친 나의 모습은 슬픈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널 잊지 않았어. 단 한순간도.
"책임회피야."
"세란아."
세란이의
눈에는 슬픔, 분노, 원망이 가득 담겨있는 듯했다. 눈에는 새벽에 꽃잎에 맺힌 이슬처럼 눈물이 고여있는 것만 같은데, 그 이슬을
놓치지 않으려 꽃잎을 오므리고 있는 것만 같다. 나 때문에 그렇게 슬픈 거니? 나 때문이니? ... 내가 너에게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너에게 용서를 비는 것뿐이겠지.
"보여?"
세란이는 손을 펼쳐 자신의 뒤에 대기하고 있는 군대를 가리켰다. 저 검은 날개들. 살의에 찬 눈빛들. 저 군대를 분명 세란이 네가 통솔하는 거겠지. 여리고, 순수했던 네가 이렇게 되어버린 건 나의 책임이겠지.
"원래 천사였던 내가, 신의 사자였던 내가!!! ...이제 검은 날개를 달고, 검은 족쇄를 들고, 반사(班師)를 하고 있다고."
"세란아..."
화를 내던 세란이는 조금 슬픈듯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손짓 한 번.
"전군"
"세란아..."
내가
너와 꼭 싸워야 하는 것일까. 어릴 때에도 싸우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 싸우진 않았어. 나는 그저 너와 매일매일 평범한, 행복한
하루를 지내고 싶었어. 지금 와서는 그게 다 욕심일까. 너의 얼굴을 보았고 대화를 했다는 것에 만족해야 할까.
"수호대"
너와 이렇게 대면하게 된 건 축복일까, 저주일까.
너와 다시 만날 날을 그렇게 고대했건만, 결국은 이런 슬픈 이야기로 막을 올릴 거라면. 그렇다면 차라리-
"공격"
"엄호"
만나지 않는 편이 더 좋았을까.
나는 지키는 쪽. 너는 빼앗는 쪽.
이 게임의 승자는 어느 쪽일까. 나의 나, 혹은 너?
이 게임엔 승자가 없어. 우린 그저 서로를 잃어버린 불쌍한 쌍둥이일 뿐이야.
나의 주군과 너의 주군의 싸움은 결국 승자 없이 끝났고, 나의 주군의 사자인 흰 날개와 너의 주군의 사자인 검은 날개의 영역으로 나뉘어 우리는 갈라졌어.
너는 전쟁을 승리로 이끌지 못해 벌의 뜻으로 이 경계선에 있고, 나는 그런 너를 보러 매일 이곳에 오고 있어. 경계선에서 서로 마주 보고 있어도 우린 만질 수 없다니. 이렇게 바로 앞에 있는데.
"세란아, 나는 널 버리지 않았어."
"같잖은 변명하지 마."
"변명이 아냐, 정말이야. 나는 널 버린 게 아니야. 오히려 너를 계속 찾았어."
너의 표정엔 불신, 원망, 증오, 경멸의 감정이 뒤섞여 블랙 오팔과 같은 색이 되었고, 그런 너의 표정을 본 내 표정은 아마 슬픔, 미안함, 자책, 그리움이 섞여 터키색의 색과 같아졌겠지.
"미안한 척, 슬픈 척, 죄책감 가진 척 모두 그만둬!!!"
"내가 다 잘못했어."
보이지 않는 벽에 양손을 대고, 나는 너에게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어. 너의 분노가 쉽게 풀리지 않을 거란 걸 잘 알아. 그렇기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너에게 그저 용서를 구하는 길 밖에 없어.
용서해 달라고 빌지 않아. 나에 대한 분노가 가라앉을 때쯤, 네가 날 용서해 줘. 네가 준비가 되었을 때. 네가 날 받아들여 줄 수 있을 때. 난 언제까지고 기다릴게.
"오래오래 이야기하자. 다 이야기해 줘. 네가 겪었던 모든 일들을."
"내가 그런다고 이야기할 것 같아?!"
날카롭게 울리는 너의 목소리. 그만큼 너는 고통받았고, 나를 그리워했고, 나를 찾았구나. 미안하다는 말로는 표현이 되지 않을 만큼.
"너 같은 걸 상대하는 시간이 아까워."
세란아,
나는 네가 내게 주는 상처라면 모두 달게 받을게. 네가 나 없이 혼자서 고통받아야 했던 것들을 조금이라도 이렇게 풀 수 있다면
나는 괜찮아. 나를 더 괴롭혀도 좋아. 나를 슬프게 해도 좋아. 그걸로 네 고통이 조금은 나아진다면.
"그분이 날 기다리고 계셔. 난 그분에게 돌아갈 거야."
"세란아..."
"내 이름 아니라고."
너의
이름은 버리고 너의 주군이 준 이름을 고집하는 너. 그만큼 내가 없을 때 너의 주군이 너에게 힘이 된 거니? 나 대신 누군가가
너의 버팀목이 되었다면 나는 너무 감사해. 나 대신, 나의 자리를 대신해준 그분에게 나는 진심으로 감사해.
"매일 올게. 나한테 다 이야기해 줘, 세란아."
내겐 너무나도 소중한. 내 목숨과는 기꺼이 맞바꿀 수 있는 그런 나의 소중한 사람. 어린 시절 나의 마음을 밝혀준 크리스털 같던 아이. 손에서 놓칠까 안절부절못하며 절대 잃어버리려 하지 않았던 그 아이.
하지만 결국에는 너무 소중했기에 잃어버린 내가 사랑하는 그 아이. 그리고 수십 년의 시간이 지나 다시 만나게 된 그 아이는 내 적이 되어 있었고, 나를 원망하였고, 나를 증오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 풀고 싶어. 나는 널 버리지 않았어. 나는 널 사랑해. 네가 내 인생에 전부였으니까, 다시 돌릴 수 없는 운명의 실을 탓하지 않고 엉켜버린 너와 나의 실을 조금씩 풀어볼래.
두 개의 실이 엉켜 풀 수 없을 정도로 꼬여버렸지만 그래도 난 그 실을 자르지 않고 손으로 조금씩 풀어낼 거야. 네가 다치지 않게. 네가 상처받지 않게. 그렇게 조금씩.
너와 내가 같이.
"난 널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어."
"... 이건?"
"기억나? 내가 너에게 어릴 적에 항상 꺾어다 줬었잖아."
하얀 칼라 꽃 한 송이를 세란이에게 주었다. 꽃은 마음대로 오갈 수 있어. 그리고 꽃의 의미처럼 내 마음도 너에게 갈 수 있을까.
"칼라의 꽃말에는 천년의 사랑이라는 뜻이 있어."
"..."
"너를 천년이 지나도 사랑해. 기다릴게. 난 항상 너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고개를 숙이며 잠시 스쳐 지나간 너의 표정은 참 복잡해서 내가 감히 형용할 수 없어. 나의 진심이 너에게 닿은 것일까.
우리가 과연 옛날처럼 그렇게 다시 웃으며 마주할 수 있을까.
나는 언제나 고대하고 있어. 네가 나를 용서해 주는 날이 오길. 우리가 다시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오길.
"... 나, 살아도 돼?"
힘겹게 입을 뗀 너의 창백한 입술에서 새어 나오는 소리는 너무도 애처로워서, 너무 슬퍼서. 그래서 널 더욱 안아서 달래주고 싶은데 난 갈 수가 없어.
"살아. 넌 살아도 돼. 아니, 살아줘."
떨리는 나의 목소리와 떨리는 나의 진심이 너에게 과연 전해졌을까. 나는 불안해하며 너의 표정을 살폈어. 너도 나처럼 슬픈 눈을 뜨고 있구나.
"난 그곳으로 갈 수 없어."
그래, 이곳은 흰 날개의 영역. 그리고 너는 희었던 날개가 검게 변해버려 이곳으로 올 수 없어. 하지만 난 널 되찾을 거야. 반드시 이곳으로 올 수 있게 할 거야.
내가, 우리가 잃어버렸던 어린 시절의 추억들을 다시 쌓지는 못하더라도 나는 널 기다리고 있어. 언제나.
"넌 반드시 올 수 있어. 내가 그렇게 만들 거야."
"내가 가도 정말 괜찮은 거야?"
이제는 서로 닿을 수 없는 곳에서 너는 손을 내게 뻗었고, 나도 너에게 손을 뻗었어. 투명한 무언가가 우리를 분명히 막고 있지만 우리는 떨어져 있지 않아. 우린 반드시 예전처럼 하나가 될 수 있어.
내가 너의 날개였던 것처럼. 네가 나의 희망이었던 것처럼.
"너는 내 동생이야. 아무도 막지 못해."
"..."
슬픈 미소로 내게 대답하는 세란이. 그래, 너는 그렇게 웃어줘. 그동안 나 없이 얼마나 힘들었니.
이젠 내가 힘든 걸 다 감당할게. 너는 부디 그렇게 웃고만 있어줘.
"형이라고... 불러줄 수 있어?"
"뭐?"
"한 번만. 딱 한 번만 들어보고 싶어."
몇십 년 만에 널 보는 거니까. 옛날처럼. 너와 내가 아직 손을 잡고 길거리를 누볐던 그때처럼. 그때처럼 환한 미소를 다시 보진 못하더라도. 옛날처럼. 옛날과 같은 목소리로. 옛날같이 너에게.
"..."
"지금 당장이 힘들어도 난 언제나 기다리고 있어. 네가 그동안 나를 기다렸던 만큼, 나도 기다릴게."
너와 내가 보지 못 했던 시간만큼 너에게 불리지 못한다 해도 상관없어. 몇 배로 더 오래 걸린다고 해도 상관없어.
그저 한순간만이라도 행복했던 그 옛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를 버렸던. 아니, 나를 잃어버렸던. 나를 지켜준다며 날개가 약했던 나를 대신해 대신 날아주었던 내 쌍둥이 루시엘.
몸은 강했지만 마음은 나처럼 여렸던 내 루시엘. 서로 의지했었던 루시엘과 나.
루시엘, 아니 최세영. 내 하나뿐인... 내 반쪽인... 내...
"... 형."
우리가 있었던 그 자리에는 노란색과 갈색의 메리골드 한 쌍이 피어났다. 우리의 이야기를 대신 말해주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