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메신저(Mystic Messenger)

[707 X 여주] 마지막 선물

설멩이 2016. 8. 20. 06:32

*시크릿 엔딩 2 이후
*정보원의 보복으로 여주가 죽었다는 설정입니다
*약 스포 주의




"세븐 씨, 가요!!"
"안돼요, 당신을 두고!!"
"아녜요. 나는 괜찮으니까... 만약 내가 죽으면 세븐 씨가 제 몫까지 다 살아줘요...!"
"안돼-!!"


"-!!"

당 신의 죽는 순간을 지켜본 꿈. 그 악몽 같던 꿈.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일어난 후 자각한 내 몸은 식은땀이 흐르고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내 눈에선 아픈 눈물이 흐른다. 다시는 기억하기 싫은, 하지만 절대 잊을 수 없는 그 순간.

"하아...하아..."

계속 떨리는 손을 겨우 잡고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났다. 침대 옆 협탁에는 미지근한 물과 진정제가 놓여있다. 진정제를 먹었지만 쉽게 진정되지 않는다.

"...미안해요."

진정제를 먹고 난 뒤 보이는 것은 그녀와 내가 함께 찍은, 서로 마주 보며 웃고 있는 사진. 저 때는 우리가 이렇게 헤어질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세븐 씨! 짜잔! 선물이에요!
"이게... 뭐예요?

당신이 건네준 자그마한 상자를 열어보니 그 안에는 사탕이 가득 담겨있었죠. 나는 당신에게 웬 사탕이냐 물었고, 당신은 그저 배시시 웃으며 우선 하나 먹어보라고 말했었죠.

"음, 맛있어요!"
"선물에 의미가 있는 거 알아요?"

당신은 사탕의 선물의 의미가 '당신을 좋아합니다' 라고 알려주었고, 그 이후로도 당신은 계속 내게 선물을 주며 선물의 뜻을 알려줬었죠.

그때 내가 더 선물해 줄걸. 내가 더 당신을 많이 아낀다는 걸 알려줄걸. 지금 이렇게 그리워하고 후회할 걸 알았더라면.



"...오늘도 가냐?"
"가야지."

벤더우드가 불쌍하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본다. 나 때문에 죽은 거야. 그녀가 날 보고 싶어 하지 않아도 나는 가서 용서를 구해야 해.

"야, 아무리 그래도 네 몸 정도는 챙기면서 해라. 산 사람은 살아야지."

나는 그녀가 없으면 살아있지 않아. 그녀가 생전에 내게 해줬던 것처럼. 그녀에게 선물로 내 마음을 전부 전해줄 거야.


"오늘은 날이 좋네요. 거긴 어때요?"

당신 혼자 그 차가운 땅 속에 있으려니 얼마나 무서울까요. 미안해요, 내가 다 잘못했어요.

"오늘은 향초랑 바늘을 가져왔어요. 당신, 장미 향 좋아했죠? 장미향으로 가져왔어요."

묘 앞에 향초를 피우고, 자리를 잡아 앉았다.

" 향초의 뜻은 '영원한 사랑을 위하여'래요. 당신에게 영원한 사랑을 줄게요. 바늘의 뜻은 '내 전부를 그대에게'라는 뜻이래요. 미안해요, 이런 말할 자격 없는데. 하지만 계속 당신에게 내 전부를 걸게요. 나는 당신을 영원히 사랑할 거니까. 당신을 위해서라면."



"세븐 씨."
"다, 당신 맞아요?!"

꿈에 나온, 언제나 그리던 당신. 당신이 내 꿈에 나오다니, 정말이죠? 정말 당신 맞는 거죠?

"세상에, 정말 당신 맞아요? 정말, 정말 보고 싶었어요. 당신이 너무... 보고 싶어서...!

그만 당신을 껴안고 눈물을 흘려버렸다. 당신을 보고 주체할 수 없는 내 감정처럼 내 눈물도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렸다.

"이제 놓고 싶지 않아요. 계속 이렇게 있고 싶어요."
"선물 잘 받았어요. 장미향 향초라니, 제 취향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네요?"

입을 막고 쿡쿡 웃는 당신. 정말로? 내 선물이 당신에게 닿았단 말이에요?

"세영 씨, 다 괜찮아요. 다 괜찮아. 원망하지 않아요."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내 품에 안겨있던 그녀가 사라졌다. 손에 움켜진 모래사장의 모래처럼. 쌓아놓은 모래성을 파도가 앗아가듯이. 잡을 새도 없이 순식간에.

"안돼, 가지 말아요. 어디예요?!"


"안돼... 안돼...!"
"안돼긴 뭐가 안돼. 야, 일어나."
"뭐야, 벤더우드?"

날 깨운 것은 다름 아닌 벤더우드였다. 갑자기 우리 집엔 왜 온 거지?

"진정제 받아 갔다고 했을 때는 순 뻥인 줄 알았는데 받아 갈 만 했네. 야, 손 떨린다. 약 먹어.

내 팔은 또 떨리고 있었다. 당신을 잡자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일까.

"무슨 일로..."
"어제 안색 보니까 영 안 좋아서 오늘은 와봐야겠다, 했는데 오자마자 악몽을 꾸고 있네. 괜찮냐? 너 안색 엄청 안 좋아. 악몽은 언제부터 꿨냐? 설마 그날부터 계속?"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벤더우드는 날 빤히 쳐다보더니 내게 겉옷을 던져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뭐야."
"뭐긴 뭐야. 네가 빨리 그 여자에게 가야 좀 나아질 것 같아서 그런다. 준비해. 그, 맨날 전해주던 선물도 챙기고."


"나 근데 오늘 처음 가는데.
"괜찮을 거야.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니까."

벤더우드는 빈손으로 오기 뭣 했는지 내게 물어 그녀가 좋아하던 과자를 사 왔다.

"어, 음... 안녕... 하세요?"
"그냥 반말해. 매일 반말했으면서."
"아니 그... 실례되는 말인 줄은 알지만 고인한테 반말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서."
"괜찮아."
"으... 알았어. 안녕, 간만이다."

벤더우드는 말 보따리를 풀었고 이젠 내가 선물을 줄 차례가 되었다.


"뭐냐, 그건?"
"물감이랑 잉크."
"나도 눈 있거든? 알거든? 그걸 왜 가져왔냐 이 말이지.
"기다려 봐."

벤더우드를 지나쳐 비석 앞에 물감과 잉크를 두었고, 조금씩 입을 열었다.

" 물감의 뜻은 '우리의 추상은 언제까지나 계속될 거예요'라는 뜻이래요. 참 맞는 말이죠? 난 영원히 당신을 기억할 거니까. 그리고 잉크는 '당신과 나의 추억은 지워지지 않아요'라는 뜻이래요. 참 로맨틱하지 않아요? 내가 당신을 영원히 기억할 테니까 당연한 걸까요?"
"선물을 항상 들고 오는 게 그런 이유였냐?"
"응."
"여러모로 참 대단한 녀석이야..."



"세영 씨, 여기 누워서 뭐 해요? 어서 집으로 가요!"
"집... 이요?"

집은 불타서 없어졌을 텐데요. 왜냐면 당신이... 당신이... 뭐였지?

"다들 기다리고 있다고요! 오늘 파티하기로 했잖아요?"

파티? 오늘이 파티날이었나?

"얼른 가요!"
"네, 네. 가요."


"왜 이렇게 늦었냐? 무슨 일 있었어?"
"세영 씨가 한참을 멍을 때리고 있더라고요! 미안해요!"
"아냐아냐, 아가씨가 미안할 일이 아니지~"
"형, 형 괜찮아요? 표정이 별론데? 무슨 일 있어요?"
"어? 아냐아냐, 무슨 일은..."

뭔가, 아주 중요한 것을 잊어버린 것 같은. 아주 소중한 무언가를 잊은 것만 같은.

"그럼 즐기자고요! 자, 건배~!"
"건배!!"

다들 손에 잔을 하나씩 들고 마신다. 그래, 잊은 게 뭐가 있겠어. 이렇게 행복한데.
점점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고, 조금씩 술이 취한 모습들이 보인다.

"흐음..."

뭔가 이상한. 뭔가가 어색한 이 기분을 감출 수 없다. 현실이 현실 같지가 않아.

...잠시만, 현실? 여기가 현실이었던가?

"여주 씨, 이거 현실 맞죠?"
"...? 뜬금없이 무슨 소리예요?
"아, 아니에요. 나도 참, 하하. 이상한 소리만 하네."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민 형, 젠 형, 유성이, 제희 씨. 모두 취해서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하지만 여주 씨만은 취기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 얼굴.
왜지? 여주 씨가 원래 술에 강했나? 아닌데...?

"세영 씨, 왜 그래요?

아니에요. 당신은 여전히 아름답네요.라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온 순간, 깨달았다.
당신은 죽었어.

"...꿈?"

다들 취해서 널브러져 있던 RFA 멤버들이 '꿈'이라는 단어 하나에 모두 나를 쳐다본다.
당신마저도.
차 가운 무표정으로 계속 나를 응시한다. 당황한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잔을 놓쳤고, 유리가 깨지는 쨍한 소리가 날 거라는 내 예상과는 달리 유리는 깨지지 않았고, 유리잔에 들어있는 액체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내가 들고 있던 상태 그대로다.
멤버들과 그녀가 나를 차가운 표정으로 계속 쳐다보고 있다. 내가 아무리 말을 걸고, 소리를 쳐도 듣질 않는다. 그저 나를 계속 바라볼 뿐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건물의 화재. 건물의 화재가 이어지는 와중에도 계속 나를 쳐다본다.
생생히 느껴지는 고통에 탈출해야 한다고 소리를 아무리 쳐도 모두 움직이지 않는다. 억지로 움직이려 해도 움직여지지 않는다.
꿈, 그래. 이건 꿈이야. 꿈이라서 그런 걸 거야.
제발 이게 꿈이라고 말해줘. 제발.



"허억-!!"

경련하는 눈꺼풀. 떨리는 눈동자. 온몸은 이미 식은땀으로 흥건히 젖어버렸고, 손만 떨리던 평소와는 달리 온몸이 사시나무 떨리듯이 떨린다. 모두가 날 무표정으로 보던 그 순간의 공포. 불길에 휩싸인 건물. 구할 수 없던 멤버들과 당신. 무능력한 나.

진정제를 찾아 뻗은 손은 그만 컵을 쳐 유리컵은 바닥에 던져졌고, 쨍한 소리를 요란하게 내며 깨졌다. 그와 동시에 날 괴롭히던 감각이 무뎌졌다.

"하아, 하아. 하아..."

진정되지 않는 가슴을 겨우 움켜쥐며 주방으로 향했다.
한 걸음. 한 걸을 내디디며 이게 꿈이 아닌 현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 꿈이 아냐. 이건 꿈이 아냐...


"오늘은 선물이 뭐게요?"

애써 웃음을 지으며 당신 앞에 선다. 놀라 진정되지 않던 내 가슴은 조금은 다른 의미로 진정되지 않는다.

"이게 마지막 선물일 것 같아요."

그게 무슨 소리예요?라고 묻는 당신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다시 한번. 다시 한전 당신의 목소리를 생생히 듣고 싶다. 다시 한 번 당신을 보고 싶다. 다시 한 번, 다시 한 번... 당신을 안고 싶다.

"전화카드랑 레코드 판이에요."

진정되지 않는 가슴을 가라앉힌 후,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 지금 요동치는 내 감정은 기대, 설렘, 평화일 거야.

" 전화 카드의 뜻은 '어느때나 당신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요' 라는 뜻이래요. 지금 내 상황과 너무 딱 맞아서 가져왔어요. 그리고 레코드판은 음, 진짜 의미하는 건 제가 선물하는 의미와는 조금은 다르겠지만 '당신과 함께 있고 싶어요.' 라는 뜻이에요."

말을 마치고 나자 가릴 수 없는 기쁨을 입꼬리에 비췄다. 난 이제 당신에게 갈 거예요. 당신과 같은 곳으로.

"금방 갈게요. 조금만 기다려요. 혼자서 얼마나 무서울까."


"강 비서, 이 메시지의 의미는 내가 생각하는 게 아니지?"

RFA 메신저에 707이 남겨놓은 메시지.

"...아무래도 세영 씨를 찾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뭐지? 젠?"
'야, 너 세영이가 남겨놓은 메시지 봤어?!
"그래서 지금 찾아볼 계획이야."
"유성 씨?"
'제희 누나! 세영이 형 뭔가 이상해요! 벤더우드 씨한테 물어보니 집에 유리로 난장판이 돼있었다던데!
"! 지금 집에 안 계신 겁니까?"
'네, 그런 것 같아요!'
"이사님."
"그렇다면 갈 곳은 한 곳뿐이지. 당장 헬기를 준비해."
"알겠습니다."


배가 뚫리면 이런 기분이구나. 엄청 아프네. 그렇지만 불에 타 죽는 게 제일 아픈 거라던데. 당신은 얼마나 아팠을까요.

"여주... 씨..."

힘겹게 뱉어낸 한 마디. 죽기 전에 한 번쯤은 불러보고 싶었어요. 죽을힘을 다해서.

"사랑... 해요..."

배를 찔렀지만 일부러 위쪽을 통과시켜 아마 폐가 뚫린 것 같다. 이러면 아무리 빨리 병원이 이송시킨다 하더라도 살아날 수 없겠지.

"금방...갈...게요...!"

점점 의식이 흐려지네요. 부디 내 편지를 주민 형이 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이사님, 저기!!"
"하, 무슨..."

도착한 RFA 초대 담당자의 무덤에는 복부가 칼로 찔려 사망한 707의 시체가 있었다. 그리고 그의 손에는 피가 흥건히 묻은 편지가 있었다.

"To. 주민 형... 이사님께... 쓴 편지인 것 같습니다..."

제희는 조심스레 편지를 가져와 주민에게 건넨다. 주민은 손에 피가 묻는 걸 상관하지 않은 태 편치를 찬찬히 읽어내렸다. 편지에 피가 묻은 건 얼마 되지 않았는지 편지의 내용은 손상되지 않았다.


To. 주민 형
많 이 놀랐지? 미안. 하지만 난 이제 그녀가 없는 세상에서 더 살기 힘들어졌어. 미안. 전화 카드랑 레코드판은 내가 여주 씨에게 주는 죽기 전 마지막 선물이니까 건드리지 않았으면 해. 그리고 난 여주 씨 바로 옆에 묻어줘. RFA에 대한 정보는 벤더우드한테 말해서 내 컴퓨터를 보면 다 있을 거야. 그리고 컴퓨터 안에 다 설명을 적어놨어.
다른 멤버들한테도 미안하다고 전해줘. 하지만 난 이제 더는 버틸 수가 없는 걸. 미안해, 형.


"이 바보가...!"

주민의 얼굴은 한껏 일그러졌고, 슬픔이 가득했다. 몇 달 동안 두 친구를 잃은 것이다. 그의 눈에는 깊은 슬픔이 자리했고, 곧 냉철한 이성을 그 슬픔 위에 일부러 자리 잡아 슬픔을 가렸다.

"...시신을 깨끗이 정리해. 장례를 치러줘야 하니까."

그리고 707의 마지막 선물에 한참 동안이나 눈길을 떼지 못 했다.